12/31/2013

모닝구무스메 1기와 홋카이도의 인연 vs 전라도 연예인 미쓰에이 수지, 파이브돌스 승희

모닝구무스메의 정신적 고향은 홋카이도(北海道,북해도)이다.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날씨도 매우 춥고 눈도 많이오는데, 가장 멸시받고 차별받는 지역이다.

홋카이도에서는 1860년대에도 분리 독립 운동이 일어났었고, 현재까지도 홋카이도는 일본으로부터 분리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인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일본 사회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그런데 반역의 땅이라는 홋카이도에서 모닝구무스메가 탄생해서, 간바레 니폰(힘내라 일본)을 외친 것은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김대중 정부때 모닝구무스메가 한국에 소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1) 홋카이도 동화의 시작

모닝구무스메 1기 멤버는 1997년에 결성되었는데, 슈퍼스타K와 비슷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탈락한 5명으로  구성되었었다.

1기 멤버 5명 중에서, 절반이 넘는 3명이 홋카이도 출신이었다.

연예기획사는 이들 5명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5일안에 음반 5만장을 판매할 수 있다면, 정식으로 가수 데뷔를 시킨다는 조건이었다.

물론 이것은 고도의 홍보 전략일 수도 있다. 이들의 음반 판매 실황이 TV로 중계되었으니까...

어쨌거나 이들 5명은 일본의 각 도시를 돌면서 음반을 직접 판매하게 되는데,  음반 5만장을 모두 판매하는데 성공하고 정식으로 데뷔한다.

*1일차 - 오사카 : 15612 장

*2일차 - 후쿠오카 : 9004 장

*3일차 - 홋카이도 삿뽀로 : 14853 장

*4일차 - 나고야 : 9533 장

음반은 오사카 지역에서 가장 많이 팔렸지만, 모닝구무스메를 탄생시키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게 홋카이도의 삿포로 시다.

첫날에는 방송과 언론의 힘을 받아서 1만 5천장을 판매한다.

둘째날에는 약빨이 떨어지면서, 1만장도 판매하지 못한다.

그리고 세째날 홋카이도가 나서게 된다.


1기 모닝구무스메 5명 중에서, 3명이 홋카이도 출신이다.

모닝구무스메는 세째날에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정치와 비교하자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할때, 전남 광주에서 누구를 후보로 내세울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홋카이도는 러시아와 가깝고 아주 추운 지역으로서, 눈도 폭설이 내리는 지역이다.

모닝구무스메의 세째날 아침이 밝아오는데.....아침부터 눈발이 조금 내리기 시작하고, 날씨가 추워지려는 기미가 보인다.

모닝구는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홋카이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거리에는 길다란 줄이 만들어진다.

홋카이도가 모닝구무스메를 탄생시키는 순간이 바로 이 때였다고 한다.

오후에는 날씨도 풀리기 시작한다.

홋카이도가 고향인 이이다 카오리는 당시 18세의 소녀였는데,  감격한 나머지 울다가 콘텐트 렌즈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현장에 복귀했을 정도.

홋카이도 이벤트가 끝났을때, 모닝구는 4만장 넘는 판매를 하게되고 승기를 잡는다.

모닝구의 데뷔가 확정된 것은 나고야에서 5만장 판매를 완료한 때였고, 음반 판매가 완료되고 나고야에서 모닝구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뿐이며,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모닝구를 일으켜세운 것은 고향인 홋카이도였다.


(2) 홋카이도와 모닝구의 이심전심

홋카이도는 일본에서 차별과 멸시를 아주 많이 받는 지역이다.

전라도는 애들 장난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홋카이도는 모닝구를 탄생시켰지만, 홋카이도 오타쿠들은 스스로를 낮춘다.

당시 홋카이도 파벌은  자신들이 나서게 되면,  일본 사람들이 안좋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던거 같다.

팬 문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수 있는 위치였는데도, 이들은 뒤로 물러난다.

그러나 모닝구에게 위기의 순간이 닦칠때마다, 모닝구를 구출하고 모닝구의 방향을 결정했던 것은 언제나 홋카이도 오타쿠였다.



모닝구에게 사건 사고가 많았던 이유는...이들이 홋카이도가 탄생시킨 아이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미움받고 차별받는 지역이 탄생시킨 아이돌이 국민 아이돌로 성장하는 것을, 언론과 네티즌들은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모닝구는 온갖 가십과 루머의 소재가 되었고, 스포츠 찌라시의 먹이감이 되지만, 묵묵히 참아 넘긴다.

그리고 처음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하고, 홍백 가합전 출연을 완수했을때,  이들은 "후루사토(ふるさと)"라는 노래를 발표한다.

후루사토는 "고향"이라는 뜻이다.

오타쿠가 아닐지라도, 모닝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모닝구가 노래하는 고향이 홋카이도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후루사토는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한다.

하지만 모닝구의 전성기 시절 베스트 앨범에 후루사토가 포함되었으며, 모닝구무스메 인기 멤버라면 한번쯤은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흥행에 실패했을지라도, 이 노래는 모닝구의 고향을 암시하기 때문이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 후루사토....모닝구 무스메





모닝구무스메 1기는 일본의 전라도라고 할 수 있는 홋카이도 출신이 주축이 되었던 팀이다.

그러나 이들은 홋카이도의 서러움과 차별을 이용해 인기를 끌지 않고, 홋카이도가 일본을 위해 이 만큼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준 팀이다.

노래 가사중에 "일본의 미래는 전세계가 부러워해"라는 부분이 있을 정도이고,  일본 최고야, 힘내라 일본(간바레 닛뽄)을 노래하는 팀이 모닝구무스메이다.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전라도 연예인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평가해야 한다.


덕후들이 전라도 아이돌을 낮게 평가하고 있으며, 미쓰에이 수지에 대한 평판도 그다지 좋지 않다.

전라도 사람이라서?

아니다.

지역 문화를 한국의 에너지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파이브돌스에 효영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승희에 대한 기대도 큰 거 같다.

승희가 뮤지컬에서 주연을 했다고 하니까, 보컬이나 연기력은 수준급이라 보아도 될 거 같다.

파이브돌스 6명중에서 2명이 광주 사람이니까...

한번쯤은 특징적인 호남 문화를 한국의 에너지로 표현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